본문 바로가기
영화

너무 잘 만들어 화가나는 영화 '서울의 봄'의 줄거리 / 등장인물/ 흥행 대박예감

by 창공의별 2023. 11. 30.

 

 

영화 '서울의 봄'의 줄거리

1979년 12월 12일 서울에서 하나회 우두머리 전두한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김재규가 체포된 후 국방부 회의실에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로 인한 계엄의 선포로 인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영화 서울의 봄은 김동규(김재규)를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체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까? 어디 가서 점이라도 쳤어요? 이 양반아… 밖에 나가보세요. 바뀐 거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야."
전두광이 취조실에서 김동규에게 던진 멘트를 통해 줄곧 견고했던 유신 군사독재체제로부터 이제 곧 민주적 선거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봄이 올거라 열망했던 시민들의 기다림이 헛된 바람이었다는 암시를 던져준다. 

전두광을 위시한 군내 비밀 사조직 하나회는 전두광의 동기생들인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들을 주력으로 서로 상부상조하여 군부 내의 요직을 하나 둘 차지하고 있어서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최한규(최규하) 대통령과 정상호(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이들의 권력욕을 멈추기엔 너무나 힘이 약했다.
정상호 참모총장은 전두환이 차관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등의 정치적 월권행위를 하자 이에 화가 나서 오국상 국방부장관(노재현)에게 전두광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뇌물을 받은 오국상은 전두광을 옹호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정승화는 국방부장관을 찾아가 전두광을 처벌해야 한다고 계속 요구했고, 특히 사조직이 군의 기강을 다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인사 개편을 통해 하나회 장교들의 기세를 꺾어놓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정 총장은 전두광을 보안사령관 겸 합수부장 직에서 쫓아내기 위해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보직 이동시킬 것을 국방장관과 상의하에 계획했다.  
그리고 당시 강직하고 청렴한 참군인으로 평가받던 갑종 출신인 이태신 소장(장태완)을 수도경비 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등, 하나회 측의 불온한 움직임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전두광은 이를 눈치챈 자신 친구이자 심복인 노태건을 수경사령관에 임명해달라고 정총장에 건의한다. 

전두광 보안사령관: 수경사에 이태신 장군 앉히는 거 확정이십니까? 이 장군도 나쁘지 않은데, 수경사는 대한민국 수도를 책임지는 최고의 요직이란 말입니다. 오늘 참석한 지휘관들도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정상호 참모총장: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전두광 보안사령관: 11기 노태건 장군은 어떻습니까?
정상호 참모총장: 인사권은 총장의 권한 아닙니까?
전두광 보안사령관: 예?
정상호 참모총장: 내가 뭘 결정하려면 전 장군한테 결재받고 그래야 됩니까?
전두광 보안 사령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제 말씀의 취지는…
정상호 참모총장: 그 취지, 안 들은 걸로 합시다. 응?

전두광은 여기서 밀리면 모든게 끝날 것이라 예감하고 쿠데타를 계획한다. 

전두광은 10.26 사건 당시 정 총장이 김동규와 한 패였다고 주장하면서 정상호 총장을 체포할 구실을 만들었고, 하나회 조직원들과 함께 모여서 1주일 만에 12월 12일에 작전을 실행하기로 결의한다.
1979년 12월 12일 저녁, 작전명 생일집 잔치. 전두광 보안사령관이 보낸 합수부는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으로 경비원을 제압, 정 육순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동시에 계엄사령관 정상호 육군참모총장 재수사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수도 서울 방어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소장,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 소장, 
육군 헌병감 김준엽 준장이 힘을 쓰지 못하게 연희동 요정에 오도록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정승화 체포하려면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 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보다 높은 사람은 사실상 국방부장관과 최한규 대통령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두광은 정총장 체포 동시에 정 총장 체포수사에 대한 대통령 재가를 받아서 합법화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재가 거부로 인해 실패했다는 것이다. 즉 불법 연행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12.12사태는 법적 동의를 받지 못한 불법적 쿠테다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연행과정에서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자 오국상 국방부 장관은 갑작스런 총격전에 놀라 파자마 위에 코트 하나 걸치고 가족들 데리고 택시타고 도망간다. 
미8군영내로 피신했다가 미군에 의해 육본으로 옮겨져 육본지하 벙커에 숨는다. 전두광 신군부들은 국방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 최한규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계엄사령관을 합법적으로 체포할 구실을 만들어야 하겠기에 국방부 장관을 찾지만 국방부장관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신군부들은 전두광이 대통령 재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한영구가 전두광에게 달려가 당신이 책임진다 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고 전두광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할거냐며 오히려 장성들을 일갈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전두광역을 한 황정민은 정말 황정민 아니면 연기할 수 없을 정도로 탐욕의 절정에 이른 전두광 그 모습 그 자체를 비추어 주었다. 그의 입술을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볼 때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열받은 전두광이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고 뒤이어 따라온 노태건에게 도와달라고 하자, 노태건은 2개 연대 출동하기로 결정한다. 결국 2공수와 9사단 예하 병력의 서울 출동이 결정된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을 찾아오라며 결매를 미루자 다시 한번 재가는 실패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출동한 2공수 역시 이태신이 한강다리를 죄다 통제해서 강을 건너지 못하고 행주대교로 우회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9사단은 당시에는 물론이고 현재도 우리나라 최전방 예비사단으로 활약 중이며, 특히 당시엔 평시작전통제권까지 주한미군측에 있었기때문에 최전방 부대 병력의 동원이 필요할 경우 '한미군사동맹' 협정에 의거해 한미연합군사령관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반란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한미연합군사령관 존 위컴이 격렬하게 화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장태완 장군은 "저놈아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전방 병력까지 출동시키진 않겠지…?" 라며 안이하게 생각했다. 

이후 중앙청으로 돌아온 전두광은 2여단장 도희철을 협박하여 직접 2공수로 가서 병력을 데려오게 한다. 이태신 역시 8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집요한 설득 끝에 지원을 약속받게 되면서 진압군과 반란군이 서울 한복판에서 
내전양상까지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자 되자 전두광은 민성배 육군참모차장에게 공수8여단과 공수2여단을 동시에 회군시키는 신사협정을 제안하는데, 어리석게도 민 차장은 전두광의 감언이설에 속아 이를 받아들이고 8여단을 회군시킨다.
근처에서 잠복 중이었던 2공수는 이 때를 틈타 행주대교 아래로 도강해 초소를 제압하고 행주대교에 손아귀에 넣는다. 이 소식이 육본에 전해지자 육본의 흐리멍텅한 장성들은 절망에 빠져 육본을 사수해야 함에도
육본을 버리고 이태신이 있는 수경사로 간다.

당시 전두환이 사령관이었던 국군보안사령부가 모든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두환 측이 진압군을 자기들 손바닥 안에 두고 급박히 돌아가는 상황이나 정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진군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고 본다.

한편 도희철과 2공수는 육본과 국방부를 접수하여 김준엽을 체포하고, 갑자기 사라진 오국상 장관은 국방부 청사 지하 벙커에 숨어있다가 발각된다.
이태신의 병력에 비해 질적 양적으로 우세한 반란군이기에 이태신은 최후의 수단으로 경복궁 30경비단의 야포부대에 발포명령을 내리고 5분 안에 투항하지 않으면 쏘겠다는 최후통첩을 한다. 
그러나 반란군에게 끌려온 국방장관이 확성기로 이태신에게 해임을 통보하고 후방으로 반란군 2공수 병력까지 몰려든다.
이태신은 부하들에게 자신을 따라준데에 감사를 표하고 원대복귀 명령을 내리며 반란군에 혼자 맞서며 나아간다. 

이태신이 반란군과 맞서 "하늘이 무너져도 옳은 일을 하라"는 명언대로 정의의 길을 선택한 그의 용기와 대사를 통해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에 대한 존경심이 든다. 

이태신: 니들 거기서 꼼짝 말고 그대로 있어. 내가 탱크 몰고 밀고 들어가서 니들 대가리를 뭉개버릴 테니까.

이태신: 저라고 아군끼리 싸우고 싶겠습니까. 그렇다고 저놈들한테 서울을 내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여단장님이나 저나 이 나이 먹도록 군복 입고 있는 건… 우리가 또 싸워야 할 땐 이 악물고 싸워야 되는… 군인 아닙니까. 
저는 원칙대로 싸우겠습니다. 지든 이기든 상관없습니다.

강동찬: 공부 잘하는 아드님… 봄 되면 대학교 입학식 때 꽃다발 들고 가셔야죠.
이태신: 이놈의 자식이 건방지게… 넌 네 사령관이 전두광이한테 투항하는 꼴이 그렇게 보고 싶어?!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남들이야 내 알 바 아냐. 각자 자기 소신대로… 인생 사는 거니까. 하지만 봐라, 내 이름 앞에 뭐라고 써있는지. 
수도경비사령관이 서울을 내버려두고 어디를 가라는 거야. 오늘 밤 서울은 끝까지 우리 부대가 지킨다.

2. 영화의 등장인물

전두광 소장 (황정민)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그 이왕이면 혁명이라는 멋진 단어를 쓰십시오.
인간이 명령 내리기 좋아하는 거 같지? 인간이라는 동물은 안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주길 바란다니까?

신세계의 장청이란 악역을 맡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 황정민은 이번 전두광이란 악역을 맡으며 또 다른 모습의 악역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정말 탐욕에 가득찬 모습이 보이게 연기했다고 한다. 

이태신 소장 (정우성)

정우성이 맡은 이태신은 감정을 절제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이지만 분노에 찬 모습을 연기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정상호 대장 (이성민)

"나라가 위태로운때 아닙니까 나 혼자선 할수 있는게 없어요"
신군부들의 세력에 둘러싸여 고립무원의 상태를 이성민 베테랑 연기자 답게 잘 연기한 것 같다. 

노태건 소장 (박해준)

"열차가 앞만 보고 달리는데 여기 뛰어 내릴 사람 있습니까?"
전두환과 함께 대통령을 노략질하고 엄청난 부정축제를 저지른 인간답지 않게 차분한 연기를 했다.

김준엽 준장 (김성균)

또한번 군사반란으로 나라가 뒤집어지면 이건 우리 군의 수치고 치욕입니다'
모티브인 김준기 준장역을 잘 소화한 것 같다.

최한규 대통령 (정동환)

"사후 재가입니다"
우유부단한 최규하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최한규 대통령역

오국상 국방부장관 (김의성)

관상의 한명회역에서도 얍삽하게 나오더니 서울의 봄에서도 뇌물먹고, 얍삽하게 도망부터 다니는 국방부장관역할을 실감나게 잘 한 것 같다.

공수혁 소장 (정만식)

특전사령부로 쳐들어온 30경비대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총상을 입고 실려나가면서 함께 싸우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 오진호 소령을 걱정하는 등 참군인의 모습을 보이는 역할을 했다.

오진호 소령 (정해인)

공수혁 육군특수전사령관: 뭐 하는 거야 너? 나가라는 명령 못 들었어?
오진호 육군특수전사령관 비서실장 : 사령관님 계시는데… 제가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공수혁: 야, 내 몸 하나는 내가 지킬 수 있어.
오진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혼자 계시면 적적하시지 않겠습니까.
공수혁: 진호야. 너… 안 무섭냐?
오진호: 솔직히… 두렵습니다. 하지만 사령관님과 함께 할 수 있잖습니까.
공수혁: 오진호, 똑똑한 줄 알고 데려왔더니만 좀 모자란 데가 있는 것 같다 너?

김성수 감독은 오진호 소령과 같이 반란군과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래서 짧지만 강렬하게 전사한 오진호 소령분을 중요한 장면에 넣었다. 
실제 모티브는 김오랑 소령

 

3. 관객반응과 흥행예감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스트레스”, “영화 보다 화병 날 뻔”,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나왔다.”
재밌게 즐기고, 스트레스 해소하러 갔는데, 막상 영화을 보고나니 관람 후기에 스트레스를 받고 왔다는 리뷰가 넘쳐나고 있다. 
'서울의 봄'을 본 관객들 사이에서는 열띤 한줄 평후기와 함께 영화를 보는 동안 치솟은 심박수 수치를 SNS에 올리는 '심박수 인증 챌린지' 같은 자발적 챌린지가 유행 중이다. 
 ‘서울의 봄’은 개봉 6일 만인 27일 오후 관객 수 200만명을 넘겼는데, 이 기록은 개봉 전 변칙 상영으로 개봉 날 100만명을 모은 ‘범죄도시3’을 제외하면 올해 가장 빠르게 박스오피스 200만명을 기록한 영화다. 
올해 개봉작 가운데 흥행 2위인 ‘밀수’와 3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 7일 차에 200만 관객을 동원했다. 1000만 관객을 향한 기대감이 들 정도로 잘 만든 영화라 흥행대박을 예상해본다. 

 12.12 군사반란이후 진압군의 비극적인 삶

 

정상호 대장의 모티브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대한민국 제22대 육군참모총장을 겸했지만 군사반란 다음날 해임됐고, 서빙고 조사실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
그는 1980년 3월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내란방조미수죄로 10년형을 선고받으며 17계급이나 강등 당하는 굴욕적 처분을 받고 불명예 전역한다.
 남한산성(국군교도소)에서 복역하다 형집행정지로 출옥했고, 81년 3월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특사로 사면, 복권되었다가 1988년 군적이 회복되었다. 
약 17년 만에 진행된 1997년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2년 6월 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향년 73세로 사망했다. 사후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에 예비역 대장 자격으로 안장됐다.

이태신 장군의 모티브인 장태완 수도방위사령관은 12.12 군사반란으로 인해 강제 전역을 당한 장 장군은 서빙고 분실에서 나와서도 6개월 동안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였다. 부친은 이 밥은 안드시고 술만 먹다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 자연대에 입학한 외아들이 1982년 1월 행방불명이 됐고, 한 달 뒤 고향과 가까운 낙동강 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 장군은 제16대 국회의원이 되었다가, 2010년 숨졌으며 유해는 정승화 장군 등이 묻힌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오진호 소령의 모티브인 김오랑 소령은 12·12 당시 정 장군을 체포하려고 들이닥친 3공수여단 병력이 총기를 난사하는 바람에 권총으로 맞서 저항하다가 숨졌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김 소령의 모친이 세상을 떠났고, 부인도 충격을 받아 실명하다 1993년 실족사했다. 김 소령은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다.

김준엽 헌병감의 모티브인 김진기 장군은 12·12 직후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이듬해 강제 전역을 당했다. 2006년 12월 별세했다.

개인소견

전두환은 명문없는 구데타를 일으켰다. 고려거란전쟁의 강조는 최소한 왕위정통계승을 부정하는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불륜으로 낳은 김씨 아들을 왕으로 삼으려하는 등 조정이 도탄에 빠지자 이를 막고자 목종을 폐위 및 시해하고 김치양과 그 아들을 죽이는 강조의 정변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그는 왕위를 찬탈하지 않고 현종을 옹립했다. 10.26사태이후 과도기적 정부형태의 내각, 최규하 대통령제하에서 이제 헌법개정과 민주적 선거절차에 따라 국민의 손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자유민주주의 시대를 고대하는 '서울의 봄'이 올거라 모두 믿고 있었다. 그런데 유신체제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된지 얼마되지 않아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사 구데타를 일으키고 민주주의 씨앗을 밞아 없애고 시민을 죽이고 동료 전우를 죽이고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찬탈했다. 그리고 대통령을 해먹고 천문학적인 부정축제를 일삼았다. 만고역적이자 부관참시하고 9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대역죄를 저지르고 한마디 사과없이 반성없이 죽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지옥에서 그의 혼이 불에타는 고통 속에 있다.

영화 예고편 보러가가기

영화 누적관객수 보러가기!